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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팸투어] 백제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여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탐방
전북도관광협회… 백제 유적지 탐방객 유치 진력

  • 기사입력 2023.12.10 14:16
  • 최종수정 2023.12.13 09:13

우먼타임스 = 유진상 대기자

정부는 최근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관광전략회의'를 개최했다. 회의에선 내년에 외국인 관광객 2000만 명을 유치하고, 관광수입 245억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혁신전략을 확정 발표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국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앞다퉈 관광상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역에 따라 자연풍광 여행이나 맛집기행, 전통문화 체험, 특산물 기행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런 가운데 전라북도관광협회가 백제유적지를 한데 묶어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7~8일 양일간, 백제세계유산센터와 전북도관광협회가 주관한 '백제역사유적지구' 팸투어 일원으로 동행했다. 1박 2일로 공주와 부여, 익산의 백제 유적지를 탐방하는 일정이었다. 

백제역사 유적지구 공주 공산성 입구. 오르는 길에는 송덕비가 줄지어 서 있다. (우먼타임스)
백제역사 유적지구 공주 공산성 입구. 오르는 길에는 송덕비가 줄지어 서 있다. (우먼타임스)

◇ 백제유적지를 둘러보기에 앞서

행사를 주관한 전라북도관광협회는 팸투어를 진행하는 이유에 대해 ‘백제역사유적지구’를 관광상품으로 부각시켜 많은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백제역사유적지는 2015년 7월 4일 국내에서는 12번째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왕도와 관련된 고고학적 유산이다. 대부분 백제후기(475~660)의 유산으로 궁궐, 성곽, 사찰, 왕릉이 포함돼 있다. 백제의 문화유산이자, 그 시대의 삶을 유추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와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내용에는 공주와 부여, 익산 세 지역에 남아있는 총 8개의 유적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공주에는 웅진시기 왕도와 관련된 유적 2곳으로 △요충지에 건립된 공산성 △왕릉군인 무령왕릉과 왕릉원이 있다.

또 부여엔 사비시기 왕도와 관련된 유적 4곳으로 △왕궁과 후원,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왕릉군, 왕릉원 △수도 외곽 방어시설인 나성이 있다. 익산지역에는 백제후기 무왕 관련 유적이 2곳 남았는데 바로 △왕궁리유적 △미륵사지이다.

김옥영 전북관광협회 본부장은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유네스코로부터 인정받아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됐다"면서 "우리가 보유한 고귀하고 값진 보물을 정성껏 보존하고 널리 알려야 할 사명도 갖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아울러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유적지 방문을 통해 백제의 역사와 숨결을 느껴보고, 유적의 의미를 되새겨 세계적인 관광지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백제의 왕궁을 품은 공주 공산성

투어 첫번째로 찾은 곳이 공주 공산성이다. 금서루(錦西樓)는 서쪽에 위치한 누각으로 성문의 터만 남아있다가 1993년에 복원됐다고 한다. 공산성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성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역할을 한다. 금서루까지 올라오는 곳에는 충청감영과 공주목 등에 배치됐던 관리들의 송덕비가 줄지어 세워져 있다.

공산성에 들어서기 위해 첫번째 만나는 금서루(錦西樓)와 북문인 공북루(拱北樓) 전경.
공산성에 들어서기 위해 첫번째 만나는 금서루(錦西樓)와 북문인 공북루(拱北樓) 전경.

공산성은 20만㎡ 규모의 거대한 산성이다. 산봉우리를 연결하고 깊은 계곡을 가로 질러 성벽을 쌓아 방어력을 극대화한 전형적인 방어용 산성이란 점도 특이하다. 북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동서와 남쪽은 가파른 성벽으로 된 천연요새로 꼽힌다. 

공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성곽길은 산책길로도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공산성은 해발 110m의 공산에 위치한 성곽으로 백제 웅진시기(475~538년) 때 산성 내에 왕이 거주하던 왕궁이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문주왕 원년인 475년, 수도였던 한성(위례)이 함락되면서 현재의 공주인 웅진으로 수도를 옮긴다. 이곳에서 문주왕을 비롯해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을 거쳐 성왕 16년인 538년, 지금의 부여인 사비로 옮길 때까지 64년여 동안 백제의 중심지(수도)였다.

공산성 외곽으로 탐방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 성 정상에 올라서면 공주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공산성 외곽으로 탐방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 성 정상에 올라서면 공주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록으로 보면 공산성은 백제시대 웅진성, 고려시대 공주산성, 조선시대 인조 이후, 쌍수산성으로 불리며 행정과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방형이다.

성곽의 길이는 백제시대 토성 735m, 신라시대 석성 1925m로 총 2660m이며,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은 포곡형으로 돼 있다. 조선시대 인조, 선조 이후 석성으로 개축해 현재는 동쪽 735m를 제외하고 모두 석성이다. 

동서남북 네 곳에 누각이 있는데 원래 남문인 진남루(鎭南樓)와 북문인 공북루(拱北樓)가 남아 있었고, 동문과 서문은 1993년에 복원했는데 바로 영동루(迎東樓)와 금서루(錦西樓)이다.

산성 내에는 연지(蓮池)라는 연못과 금강변에 세운 정자 만하루(挽河樓), 세조4년(1458)에 지었다는 사찰 영은사(靈隱寺) 등 다양한 역사의 산물이 남아있다. 또 산성 정상 부근에 위치했던 왕궁터에서는 아직도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다.  

◇ 황포돛배 타고 부여 부소산성으로

공주지역의 무령왕릉이나 다른 유적지는 먼발치서 설명으로 대신하고, 또다른 백제의 고도(古都)인 부여로 향했다. 나루터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선장이 방송으로 들려주는 설명을 들으며 부소산성에 도착했다. 황포돛배는 구드래 나루터에서부터 고란사 나루터까지 운행된다.

부소산성 백마강변에는 고란사(皐蘭寺)가 자리잡고 있다.
부소산성 강변에는 고란사(皐蘭寺)가 자리잡고 있다.

부여 부소산성(扶蘇山城)은 백마강을 굽어보는 높이 106m의 부소산 능선과 계곡을 가로 지르는 성곽이다. 부소산성은 남쪽에 왕궁으로 추정되는 관북리 유적지가 있다. 부소산성 내에는 낙화암과 백제의 충신 성충, 흥수, 계백 등의 정신을 기리는 삼충사가 탐방객을 반긴다.

백마강과 부여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누각 반월루, 낙화암에서 몸을 던졌다는 궁녀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사당 궁녀사, 부소산 꼭대기에 사자루 등이 있다.

부소산성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곳은 낙화암(落花岩)이다. 높이 40m의 낙화암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함락되자 의자왕의 3000 궁녀가 몸을 던져 꽃처럼 죽었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하지만 궁녀가 3000명이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낙화암 정상부에 세워진 정자 백화정( 百花亭).
낙화암 정상부에 세워진 정자 백화정(百花亭).

다만 많은 수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되며, 낙화암도 꽃이 떨어지는 것을 비유한 표현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낙화암으로 내려가기 전 정상에는 백화정(百花亭)이란 정자가 세워져 있다. 

부소산 낙화암 인근 백마강변 쪽에 보이는 절은 고란사(皐蘭寺)다.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은 궁녀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고려 현종 19년(1028년)에 세워진 사찰이라고 추정될 뿐이고, 정확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고란사 대웅전 뒤편에는 바위틈에서 나오는 약수가 있는데 한 번 마실 때마다 3년이 젊어진다는 속설이 전해져 온다.  젊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뱃속을 정화시키는 의미로 약수 한사발을 들이켰다. 그리고 나서 내렸던 나루터에서 황포돛대를 다시 타고 나와 부여와 작별을 고했다.

◇ 익산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투어 둘째날, 백제 무왕의 주 활동 무대였다고 알려진 익산 왕궁리를 찾았다. 무왕은 백제가 몰락할 당시 마지막 왕이던 의자왕의 아버지다.

백제는 지금의 서울지역을 포함한 한성(위례성)을 500여 년 동안 도읍으로 삼았고, 이어 공주(웅진)를 거쳐 부여(사비)로 천도했다가 무왕 때 익산에 왕궁을 지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도를 옮긴 것인지 별도로 왕궁을 지은 것인지 모르지만 왕이 거처했던 곳이라는 점은 발굴 유물을 통해 확인됐다. 

익산 왕궁터에는 유일하게 오층석탑만 남아있다. 이 석탑은 국보 289호로 지정돼 있다.
익산 왕궁터에는 유일하게 오층석탑만 남아있다. 이 석탑은 국보 289호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왕궁터에는 오층석탑(국보 289호)을 빼고는 당시의 건물과 시설이 사라지고 흔적뿐이다. 이곳의 유적조사는 1989년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유적조사에서 백제 왕궁으로는 유일하게 외곽 담장 크기와 내부 구조가 확인됐다.

정확하게 왕궁의 절반은 정무와 각종 의례를 위한 공간이었고, 절반은 정원과 후원으로 활용됐음이 밝혀졌다. 특히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과학적으로 설계(수세식)된 대형 화장실 유적도 발굴을 통해 확인됐다. 

왕궁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엔 미륵사지(彌勒寺址)가 있다. 미륵사지는 동아시아 최대 규모 사찰 중 하나였던 미륵사가 있던 터이다. 삼국유사에는 미륵사가 639년 백제 무왕 때 창건돼 백제의 절로는 최대 규모였다고 기록돼 있다. 이곳이 당시 미륵신앙의 중심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미륵사지 서탑과 2019년 복원된 동탑이 물에 투영돼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미륵사지 서탑과 2019년 복원된 동탑이 물에 투영돼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학자들은 무왕 재위 시기인 7세기 초에 창건되고, 임진왜란을 전후해 소실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제는 불교의 미륵 신앙을 구현하기 위해 미륵사를 만들었다. 미륵사는 백성들의 구원을 이루려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세워진 사찰이자, 백제인의 희망이 담긴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가까이에서 본 국보 제11호 미륵사 석탑.
가까이에서 본 국보 제11호 미륵사 석탑.

본래 미륵사에는 3개의 석탑이 있었다. 동원과 서원에 각각 석탑, 중원에는 목탑이 있었다. 그런데 중원의 목탑 규모나 소실 시기는 알 수 없다.

동원의 석탑은 발굴조사 당시 완전히 무너져 석재들이 주변에 흩어진 상태였다. 서원의 석탑은 많은 부분이 훼손된 채 동부 측면으로만 6층까지 남아 있었다. 석탑의 안정성이 우려돼 해체, 보수 정비와 학술연구가 시작됐다.

중원의 목탑이나 동원의 석탑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서원의 석탑은 해체 조사시 금제사리봉영기가 출토돼 무왕의 비인 사택왕후가 부처에게 소원을 빌어 639년 건립하였음이 밝혀졌다. 

서탑은 일제 강점기 콘크리트로 보강된 구조적 불안정으로 인해 1999년 해체보수가 결정돼 2002년부터 본격적인 해체 조사가 이뤄졌다. 이후 2009년 1층 해체 조사를 진행하던 중 심주석 상면 중앙에서 사리공이 발견됐다. 금제사리봉영기를 비롯 사리호, 은제관식, 청동합 등 다양한 공양품이 한꺼번에 출토됐다. 

미륵사지에선 현재도 유적 발굴조사 작업이 진행 중이다. 
미륵사지에선 현재도 유적 발굴조사 작업이 진행 중이다. 

서탑에서 금제사리봉영기가 출토됨으로써 미륵사 창건 목적과 석탑의 건립 연대 등을 정확히 알 수 있게 됐다. 서탑은 국내 문화재 공사 중 20년이란 최장 기간 다양한 측면에서의 연구와 구조보강,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진행됐다. 

현재 이곳에는 미륵사지 당간지주(보물 236호)와 1966년 발굴된 무왕과 왕비의 설화가 깃든 유물과 유적 등이 미륵사지 내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또한 2019년 재조립으로 완전 복원된 동탑과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서탑을 볼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동탑의 경우, 문헌기록이 없어 복원된 것에 대해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 국립익산박물관, 왕궁리와 미륵사지 유물 가득

미륵사지 내 위치해 있는 국립익산박물관은 1980년부터 1996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은 1997년 전북도가 주체가 되어 개관했다.

2015년 12월 말 개관한 국립익산박물관. 미륵사지내에 있고, 다양한 백제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2015년 12월 말 개관한 국립익산박물관. 미륵사지내에 있고, 다양한 백제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2009년 미륵사지 석탑 해체 보수작업 과정에서 다량의 사리장엄구가 출토됐다. 이어 2015년 7월 미륵사지 왕궁리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것을 계기로 국립박물관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따라서 지역에서 출토된 문화유산의 체계적인 관리와 교육적 활용, 관람객 유치 등을 위해  2015년 12월 말 기존 도립전시관을 국립으로 승격시켰다. 상설전시실은 1개 전시동과 3개의 실(익산백제실, 미륵사지실, 역사문화실)로 구성됐다.

익산백제실에는 왕궁리유적, 제석사지, 쌍릉 등 우아한 백제 후기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미륵사지실에는 미륵사 창건과 번영, 미륵사 중흥, 금제사리내호와 금동제사리외호, 금동향로, 무왕, 공양물, 사리장엄구 등이 전시돼 있다.

또한 역사문화실에는 옛날 일반인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빗살무늬토기, 금동모관, 옥목걸이, 거친무늬거울, 금동신발, 세발달린대형토기, 고리자루큰칼, 쇠모 등을 볼 수 있다.

◇ 백제역사유적 탐방 활성화 기대

역사 유적지나 전적지를 탐방하는 것은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갖게 된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유적을 둘러보고, 거기에 얽힌 내용을 듣다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국립익산박물관 안내 표지판과 전시유물들.
국립익산박물관 안내 표지판과 전시유물들.

유적지 인근 맛집과 힐링 족욕장 등 취미와 취향을 자극하는 장소도 많다. 백제의 서동(무왕)이 태어난 익산 왕궁리 인근의 포레스트(식물원)에 들러보면 희귀식물과 족욕도 즐길 수 있다. 왕궁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족욕장에서 발을 담그고 앉아있으면 무상무념의 세계에 빠져든다.

짧은 일정이라 유적지 곳곳을 샅샅이 살펴보진 못했지만 다시 한번 여유있게 둘러보고 싶은 곳이다. 여행사와 연계해 유적지를 관광명소로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도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김옥영 본부장 "백제역사유적지를 찾는 관람객에게 여러가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법도 모색 중이다"면서 "지자체마다 찾아오는 관광객에게 지역 특색에 맞게 덤으로 얻어갈 수 있도록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백제세계유산센터전북관광협회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가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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